이승의 마지막 길 닦는 아름다운 손

장례지도사의 세계/ 윤균섭·양수진 에이플러스라이프 의전관

 
 
근육이 서서히 마비돼 가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남자. 그와 생전에 사랑을 나눴던 여자는 남자의 죽음에 이르러서는 이승에서 마지막 장의 절차를 지극 정성으로 직접 모신다.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서 극중 장례지도사로 나온 하지원(지수 역)은 연인 김명민(종우 역)의 죽음과 대면해 예를 다해 시신을 염습(殮襲)하는 모습으로 깊은 여운을 남겼다.

그는 지난해 영화 개봉 당시 "극중 역할을 통해 장례지도사가 얼마나 숭고한 직업인지 뒤늦게 깨달았다"며 "가장 아름다운 손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현실은 으레 그렇듯 영화처럼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법. 이승의 마지막 문턱에서 고인을 배웅하는 장례지도사라는 직업은 여전히 두터운 편견의 장막에 가려져있다. 상조회사 에이플러스라이프의 경력 4년차 의전관(격조 있는 장례 의전을 행한다는 의미에서 의전관이라는 호칭을 사용)인 윤균섭 의전관과 여성의전관인 양수진 의전관을 통해 그 베일을 들춰본다.
 

◆ 염습 등 장례절차 총괄 "20대 대학원생도 선택"
 
지난 가을 어처구니없는 방화사건으로 갓 20세를 넘긴 꽃다운 처녀가 생을 마감했다. 입관식날 고이고이 키운 외동딸을 참혹한 슬픔 속에 떠나보내야 했던 어머니는 마지막 소원을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한번만 안아보고 보내고 싶어요."
 
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시신이 많이 훼손돼 입관조차 순조롭지 않았던 상태. 다소 무리한 요청이었지만, 어머니의 뜻을 받들었다.
 
에이플러스라이프의 윤균섭 의전관은 "고인을 잘 보내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은 사람들의 슬픔을 한 조각이라도 덜어드리도록 노력하는 것도 의전관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의전관은 한마디로 장례에 관한 의식을 총괄적으로 운영하는 전문가다. 고인이 운명한 날부터 마지막 3일 동안 유가족 곁을 지키며 장례절차를 안내하고 관련 행정업무를 돕는다. 장례 관련 각종 상담은 물론 입관 등 업무 전반을 책임진다.

본래 지방의 농협에 근무하던 윤 의전관은 운동 중 부상으로 1년간 병원생활을 하던  중 장례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 꿈을 여러 번 꿨는데 기억은 어렴풋하지만 아마도 선친께서 이 길을 인도해주시지 않았나 싶어요."

인터넷 등을 통해 정보를 검색해본 뒤 좋은 직업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돼 뛰어들었다. 그는 "처음 고인을 대할 때는 머리가 쭈뼛 서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무서운 건 잠깐일 뿐 장례를 접할수록 마음이 아프고 엄숙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교통사고로 심하게 손상된 시신일 경우 꿰매주고, 팔다리가 없으면 만들어서 붙여주기도 한다. 죽은 지 오래된 시신도 염습해봤다. 50대 남성이 이혼하고 혼자 살다 죽은 지 20일 만에 발견된 경우였다. 여름철이라 심하게 부패돼 눈·코·입을 전혀 알아볼 수 없었고, 온몸이 구더기로 덮여 있었다.

"큰 아들은 한번 보고선 못 알아보겠다며 멀리 가서 구토하더라고요. 이후 구더기를 치우고 깨끗하게 알코올로 씻겨 염습을 했더니 유가족들이 고마워하시더군요."
 
윤 의전관은 "자부심이나 사명감이 없으면 하기 힘든 직업"이라고 했다.
 
그가 1개월에 치르는 장례는 보통 7회 안팎. 3일장을 기준으로 20여일을 근무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여느 직업과 달리 출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고 예측할 수 없다는 게 힘든 점. 주말이라고 쉴 수도 없고, 일이 없을 때도 대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아직은 사회적인 시선도 부담이다. 윤 의전관은 "일을 시작하고 6개월이 지난 뒤에 비로소 아빠가 어떤 일을 하는지 자녀들에게 얘기를 해줬다"고 털어놨다. 다행히 가족들은 윤 의전관의 일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적극적으로 밀어준다고 했다.
 
인턴 과정에 있는 양수진 의전관은 우리나이로 26세의 미혼 여성. 동국대 생사의례학과 석사과정을 휴학 중이다. "학부(경영학 전공)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다 생소한 분야에 호기심을 갖게 됐다"며 "비전이 있겠다 싶어 진로를 바꿨다"고 말했다.

"고인을 처음 대할 때는 떨리고 긴장됐죠. 하지만 그곳에 실습하러 간 것이 아니라 의전관으로 나간 것이잖아요. 실수할까봐 무서울 겨를도 없었어요."
 
양 의전관은 "현장에 나간 지 1년이 넘으면서 입관 절차는 능숙하게 할 정도가 됐는데, 장이 시작되는 첫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원숙하게 진행하는 능력은 아직 배울 것이 많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장례지도사의 전체 업무 중에서 입관 부분은 20%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양 의전관은 "갑작스러운 일로 감정이 격해진 유가족들의 의견을 조율해야 하고, 경황이 없어 장례절차를 잘 못 이해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에 대한 효과적인 전달능력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장례 절차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무거운 시신을 옮기고, 장을 치르는 3일 동안 버틸 수 있는 강인한 체력도 필수다. 양 의전관은 "큰 상가의 경우 자정이 넘도록 퇴근하지 못할 때가 많은데 표정의 변화 없이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중요하다"며 "초기 교육 당시 오전 6시30분까지 출근해 운동장을 돌았다"고 했다. 
 
어린 여성 의전관이라 겪는 어려움도 있다. 현장에 가면 장례지도사라고 생각 못하고 다른 업무를 보는 사람인 줄 알다가 염습을 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는 유가족들이 종종 있다. 사회적 편견과 불규칙한 생활로 인해 평범한 또래 여성들처럼 데이트를 하고 결혼을 꿈꾸기도 어렵다. 그는 가족들의 반대는 물론 이 일을 시작한 뒤 사귀던 남자친구와도 헤어졌다고 했다.
양 의전관은 "남들은 무섭지 않냐고 하지만 땀이 흠뻑 날 정도로 고인을 열심히 모시고 나면 뿌듯하다"며 "그래도 지난해보다는 올해 의전관에 대한 인식이 더 좋아진 것을 느낄 수 있고 갈수록 개선될 것을 기대한다"며 웃었다. 
 
<잠깐 상식> 장례지도사가 되려면?

장례지도사가 되기 위한 특별한 조건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에는 대학이나 평생교육원에서 장례지도 관련 교육과정을 수료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대전보건대학 장례지도과, 창원전문대학 장례지도학과, 을지대학교 장례지도학과 등에 전문적인 교육 과정이 있다. 한국장례업협회에서 주관하는 장례지도사 민간자격을 취득하고 활동하기도 한다.

활동 분야는 병원 및 전문 장례식장을 비롯해 상조회사, 공원묘지시설, 전문 시신위생처리사(전문 시신 메이크업사, 전문 회복기술사), 시신 관련 국공립연구원(국립과학수사연구소 연구원 등)이다. 급여는 업체나 경력별로 천양지차. 고품격 서비스를 추구하는 상조회사의 경우 과거 일부에서 행해지던 음성적인 거래를 방지하기 위해 월 500만원 이상의 기본급여를 제공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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